사건 핵심 정리

지난해 12월 터진 선크림 SPF 조작 논란이 드디어 결론이 나왔다. 아직 구체적인 업체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몇몇 화장품 업체에 화장품법 제13조 ‘부당한 표시 및 광고’ 행위로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우선 이번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어 이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사건의 핵심을 정리해보았다.

사건의 발단

이번 한국 선크림 SPF 논란은 해외에서 시작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끈 한국 제품인 ‘퓨리토 센텔라 그린 레벨 세이프 선’이 그 발단이다.

이 제품은 라벨에 SPF 50+라고 표시돼있고, 사용된 UV 필터는 두 가지이다. 그런데 함량이 놀랍도록 적다. 디에칠아미노하이드록시벤조일헥실벤조에이트가 3%, 에칠헥실트리아존이 2%. 총 함량이 5%이다. 게다가 퓨리토 측은 표시된 SPF는 50+이지만 시험기관에서 받은 실제 SPF는 84.5라고 홍보해왔다.

퓨리토 센텔라 그린 레벨 세이프 선
퓨리토 센텔라 그린 레벨 세이프 선

겨우 5%의 UV 필터로 SPF 84.5를 냈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헝가리의 전문가(주디 라츠·Judit Racz·INCI디코더의 창립자)가 검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폴란드의 한 시험기관에 인비트로, 즉 기계 테스트를 의뢰했고 결과는 SPF 15.8이 나왔다. 같은 시험기관에 인비보, 즉 임상 테스트도 의뢰했는데 결과는 19가 나왔다. 그후 독일의 시험기관에 한 번 더 임상 테스트를 의뢰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수치인 19.2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유튜버 안언니로 잘 알려진 피부과학연구원 안인숙 원장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검증에 나섰다. 이번에는 SPF 28.4가 나왔다.

폴란드 in-vivo 테스트
폴란드 in-vivo 테스트
독일 in-vivo 테스트
독일 in-vivo 테스트
유튜버 안언니 검증
유튜버 안언니 검증

표시된 지수는 SPF 50+, 업체가 갖고 있다는 시험 결과는 84.5, 그런데 유럽의 시험기관 두 곳에서는 SPF 19가 나왔고, 한국의 시험기관 한 곳에서는 SPF 28.4가 나왔다. 어느 쪽의 결과도 SPF 50과는 거리가 멀다.

업체의 해명

우선 퓨리토 측의 해명을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사실 퓨리토는 이 제품을 개발한 당사자가 아니다. 퓨리토는 책임판매업자이고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한 곳은 나우코스라는 회사다.

퓨리토는 나우코스에 개발부터 임상, 제조, 기능성화장품 인증까지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SPF가 이렇게 낮을 줄은 몰랐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물론 책임판매업자로서 즉각적으로 사과했고 제품 판매를 중단했으며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환불까지 해주었다.

그럼 나우코스는 어떻게 해명했을까? 사실 제조사는 B to C 기업이 아니라 B to B 기업이기 때문에 소비자를 상대로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문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퓨리토 측의 문의에 적법한 절차로 기능성 심사를 통과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사건의 내막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퓨리토 제품은 시장에 나오기 전에 정식으로 SPF 테스트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SPF 테스트를 받은 적이 없는 제품이 어떻게 SPF 50+로 표시되어 시장에 출시될 수 있었을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외선차단제의 ODM 시스템과 기능성화장품 심사에 관한 규정을 알아야 한다.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은 화장품 회사가 화장품 전문 공장(제조사)에 개발과 제조를 위탁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뜻한다. ODM을 이용하면 전문 인력과 제조시설 없이도 화장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중소 화장품 회사들이 ODM에 의존하여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자외선차단제는 ODM을 많이 한다. 개발이 워낙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작은 화장품 회사들에게 자체 개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ODM 주문이 들어오면 제조사는 어떻게 할까. 그 회사만을 위한 새로운 자외선차단제를 개발해줄 거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둔 제품을 약간 변형해서 새 제품을 만든다. 주요 성분은 그대로 놔두고 식물추출물, 비타민 등의 영양성분과 항산화성분, 색, 향, 질감 등만 살짝 변형한다. 업계에서는 이미 만들어둔 제품을 모처방, 약간 변형한 제품을 자식처방이라고 부른다.

모처방을 이용해 자식처방을 만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장점이 또 있다. 바로 기능성 화장품 심사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장품법의 기능성화장품 심사에 관한 규정 제6조 제6항에 의하면 이미 기능성 심사를 받은 제품과 같은 제조사에서 개발 및 제조했고 사용된 자외선차단 성분의 종류, 규격, 분량, 제형 등이 같으면 자료 제출 없이 보고만으로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자료 제출이 면제된다는 것은 별도의 SPF 임상 테스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즉, 모처방의 테스트 결과를 자식처방의 테스트 결과로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퓨리토 자외선차단제 역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나우코스는 2017년 개발한 ‘포플러스 선로션’(시장 미출시)을 모처방으로 하여 ‘퓨리토 센텔라 그린레벨 세이프 선’, 그리고 ‘퓨리토 센텔라 그린레벨 언센티트 선’, 이렇게 두 개의 자식처방을 만들었다.

퓨리토 자외선차단제 제작 과정
퓨리토 자외선차단제 제작 과정

포플러스 선로션이 SPF 50+로 기능성 인증을 받은 제품이기 때문에 퓨리토의 두 제품은 별도의 SPF 테스트 없이 보고만으로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았다. 임상에서 SPF 84.5를 받았다는 것도 퓨리토 제품으로 받아낸 결과가 아니라 모처방인 포플러스 선로션의 결과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기능성 화장품 인증이 이렇게 허술하다니, 놀란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이러한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작은 화장품 회사들이 큰 자본 없이 기능성 화장품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SPF 임상 테스트는 한 번 진행하는 데에 보통 미국 달러로 5000~1만 달러 정도가 든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의 테스트로 원하는 SPF 수치가 나오면 다행이지만 만약 나오지 않으면 제품의 포물레이션을 조정한 후 다시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이 밖에도 각종 안전성 자료를 만들어야 하고 PA 임상 테스트도 해야 하므로 개발과 인증에만 수천만 원이 든다. 자본이 적은 중소 업체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이미 인증받은 제품을 변형하면 이런 모든 테스트와 서류 제출이 면제되기 때문에 작은 화장품 회사들도 쉽게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둘째는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사실 지금까지 자외선차단제는 UV 필터의 종류와 함량이 똑같고 제형이 같다면 향이나 식물추출물, 텍스처가 약간 바뀌는 것은 대체로 SPF 수치에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같은 제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능성 심사를 또 받게 하는 것은 행정의 중복, 행정의 낭비일 수 있다. 이런 낭비를 줄이고 중소 업체의 부담을 덜어주면 더 다양한 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있고, 화장품 산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모처방의 SPF와 자식처방의 SPF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다는 것,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시켜주었다. 이것은 우리가 매우 중대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기능성 화장품 심사에 관한 규정은 약간의 포물레이션 변화는 SPF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능성화장품 승인 자외선차단제
2020년 기능성화장품 승인 자외선차단제

현재 화장품 시장에는 정식 심사를 받고 나오는 자외선차단제보다 기존의 제품을 변형하여 심사를 면제받고 나오는 자외선차단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소비자가 어떻게 표시된 SPF를 믿고 자외선차단제를 선택할 수 있을까.

SPF 미달 제품, 또 있다!

실제로 이번 SPF 논란은 퓨리토 제품에 국한되지 않다. 나우코스는 같은 모처방을 이용하여 퓨리토 외에도 여러 화장품 회사에 자외선차단제를 만들어주었다. 이미 해외 소비자들이 발 빠르게 ‘디어클레어스 소프트 에어리 UV 에센스’라는 제품에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디어클레어스 측이 4곳의 시험기관에 의뢰해 확인한 결과 4곳 모두 표시된 수치의 절반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 밖에도 같은 모처방을 이용한 제품이 10개 정도 더 있다. 이 중에는 성분을 변경한 제품도 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품을 삭제하거나 품절 상태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판매를 중단한 제품도 있다. 그러나 타 쇼핑몰을 통해 여전히 판매하고 있는 제품도 있다. 판매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반드시 SPF를 검증하여 소비자에게 공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6월 25일 최종 확인).

그리고 논란이 된 제품들이 또 있다. 유튜버 안언니의 검증으로 닥터 자르트 솔라바이옴 앰플, 휘게 릴리프 선 모이스처라이저, 라운드랩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 이렇게 3개 제품이 SPF 미달로 밝혀졌다.

논란이 된 자외선차단제
논란이 된 자외선차단제

이 외에도 크레이브뷰티 비트더선이 SPF 미달을 인정했고, 킵쿨 수드 대나무 선 에센스와 메디힐 N.M.F. 선세럼은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SPF 논란이 제기되자 판매를 중단했다. 이 제품들을 제조사별로 구분하면 역시 두 개의 같은 모처방에서 나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닥터 자르트와 크레이브뷰티 제품은 코스맥스의 동일 모처방에서 나왔고, 휘게와 라운드랩, 킵쿨, 메디힐은 그린코스의 동일 모처방에서 나왔다.

조작일까

이번 사건이 터진 후 곧바로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관련된 모든 기업을 다 조작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브랜드사와 제조사를 나눠서 생각해야 하고, 또 조작인지, 시스템의 허점인지, 혹은 단순 실수인지도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책임판매업자들, 즉 브랜드사들은 속일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ODM 시스템에서 브랜드사들은 제조업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자가 알려준 SPF 지수를 그대로 믿고 열심히 홍보하고 판매할 수밖에 없다.

다른 시험기관을 통해 SPF를 검증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그것은 법이 요구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법이 요구하는 사항을 잘 지켰는데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법이 잘못된 거지 기업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식약처가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번에 SPF 허위 기재로 문제가 된 제품은 모두 기능성 화장품 심사를 면제받은 자식처방 제품들이다. 그런데 만약 자식처방만 SPF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미 모처방부터 SPF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제조사뿐 아니라 시험기관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일이다.

둘 중 한쪽이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둘이 공모해서 조작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조작으로 드러난다면 제조사에도, 시험기관에도 무거운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 식약처가 행정처분을 예고하였으므로 어떤 기업이 어떤 처분을 받는지 지켜봐야겠다.

최지현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2020·세종도서 선정),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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